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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Weltanschaung)으로서의 철학에는 조금 더 넓게 사상이나 종교등도 포함되지만 이론으로서의 철학은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 놓은 철학의 범주는 엄밀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이라는 개념은 ‘세계’ 와 ‘관’ 이 합쳐진 것이다. 먼저 ‘세계’ 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란 ‘내 바깥에 있는 모든 것’ 으로서 ‘대상 일반으로 표현되는 무제한적 전체’ 이며, 덧붙여 공부는 그러한 ‘대상 일반으로 표현되는 무제한적 전체’ 로서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보통 자연의 항상성에 빗대어 인간의 변화와 한계를 이야기하는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자연은 의지도 없고 사유도 없기 때문에 환경 안에 닫혀 있지만 인간은 환경이나 세계에 열려있다. Max Scheller(막스 쉘러)는 이를 인간의 ‘세계 개방성’ 이라 불렀다. 자신이 처해있는 구조를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인간에게는 반드시 고정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는 않으며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공부해서 만들어 내놓은 ‘세계상’ 은 특정한 관점에서 파악된 세계이해이며, 세계관은 이러한 세계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행위하려는 ‘의지의 태도’ 로서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즉, 대상에 대한 분명한 ‘가치평가’ 를 가진 상태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Dilthey(딜타이)는 세계관이 세계에 대한 지식, 가치평가, 궁극목적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계관은 행위의 구속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는데, 궁극목적이 같아도 가치평가가 다르다면 세계관은 달라지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현실적 행위를 이끌어 내어 의례나 형식적 절차, 제도 등으로까지 나아간다. 즉, 세계관은 정신적인 것이지만 행위라는 것으로 객관화되어 나타나게 되며 이 행위들이 모여 제도가 되는 것이다. 정신이 결국에는 행위를 유발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정신의 힘이라 할 수 있으며, 공동체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 이것을 ‘객관적 정신’ 이라 부를 수 있고 이것의 외부적 표현 형태들로서 법, 의례, 제도, 형식절차 등을 들 수 있다. 객관적 정신이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특정한 인간 공동체에 드러난 경우 우리는 그것을 ‘시대정신’ 이라고 부른다. 

사회과학 교육에서 ‘방법’ 강의들이 대부분 다른 것들은 거의 다루지 않고 통계적 방법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정통적 견해의 영향을 증언한다. 과학적 편견은 여기에도 만연되어 있다. 마치 측정만이 유일한 종류의 관찰과 유일한 종류의 경험적 기법이며,(반복될 수 있어야만 비준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관계는 그것이 필요한 크기의 표본속에서 관찰되지 않았다면 어느정도는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방법에 의해 이끌어낸 지식은 흔히 ‘단순히 직관적인 것’으로 또는 선험적인 것으로 기묘하게도 오만하게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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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양적 방법과 모델의 사용법을 배우는 그리고 그것의 서술적 의미를 질문하는(즉 수학적 질서와 인과적 질서 사이의 관계를 묻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선생들이, 그러한 질문이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야단치는 것을 보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다. 수학적 질서와 엄격성을 성취하는 대가는 흔히 모델로 만들어지는 객체의 성질을 무시함으로써 산출되는 개념적 엉성함이다. 모델화가 질적 분석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복합적인 그렇지만 파악가능한 사회적 형태들이 논리적 범주들의 지위로 환원되거나 조작하기는 쉽지만 해석하기는 어려운 ‘내용 없는 추상’으로 환원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이 이런 식으로 지식을 폐기하고 단지 ‘변수들’과 그것들의 양적 관계에 입각해서 사유하기 시작한다면, 주변에 ‘이론’이 별로 없다는 인상을 얻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시작하면서 이용가능한 이론을 무시하는 통계분석 이용자들이 간단히 그들의 작업의 끝에서 이론의 결여를 불평하는 것을 보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확실히 통계학자들은 연구자들에게 쓰레기를 집어넣으면 쓰레기가 나오는 것(GIGO: ‘Garbage In-Garbage Out’)을 피하기 위해서는 연구하고 있는 체계에 대한 이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이 건강한 충고는 ‘이론’의 성질이 오해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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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세이어(지음), 이기홍(옮김), <사회과학방법론>, 한울, 1999

Method in Social Science, Andrew Sayer(1992)

2012.2.19, 07:10, 옥계.

2012.2.19, 07:10, 옥계.

2012. 2.18, 울산바위 전망대

2012. 2.18, 울산바위 전망대

구술사회와 문자사회

문자가 사회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지 않았던 구술사회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몸 말고는 이전 세대의 지식이나 경험을 전수할만한 ‘용기(vessel)’가 존재하지 않았던 구술사회에서는 연설이나 노래, 춤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순히 매체 기술적 측면에서 보자면 당시에는 정보를 유지하거나 저장할 수 있는 여타 다른 도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 전달방법이 고안된 측면이 있는데 여기에는 자유시나, 격언, 서약, 구호, 농담 등이 포함된다. 원시사회에서의 언어 사용과 관련한 말리노스키(Malinowski)의 연구에서는 네 가지 형태로 구술문화에서의 언어사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는 실제적인 생활에 도움을 주는 행위양식으로서의 언어로, 사냥 등 생존을 위한 활동을 할 때 서로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는 집단 내에서의 오락적 사용, 셋째는 인사와 같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사회적 상호작용, 마지막으로 넷째는 저주나 기도등에 사용되는 신비한 힘을 가진 언어로써 집단의 의식에 사용되는 경우를 들고 있다.

구술사회에서는 부족 문화의 다양한 정체성과 관련하여 부족 내 지식들의 대부분이 자연 또는 초자연적인 힘들과 일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부족의 신화에 대해 서로 말하고 외우는 것은 해당 부족 내에서의 사회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였고, 구술을 통한 전승을 제외하고 사회의 문화와 정체성, 지식등을 지속적으로 세대 간에 전승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이 시기에는 없었기 때문에 춤이나 타악기 사용, 의상, 노래 등이 사회 내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된 것이다. 초자연적인 주술언어나 의식과 관련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당시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말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말의 소리 자체가 주술적인 능력을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주술적인 언어의 사용은 자격과 시간, 장소등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이와 대비되는 문자사회는 ‘글’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사회에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글’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이전의 구술문화적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대체된 것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구술사회에서 문자사회로의 전환은 중첩의 시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문자사회는 쓰기라는 매체이용 형식이 사회 내에서 일상화 되고 기존 구술사회에서의 여러 정보전달 방식만큼 친숙해진 사회를 뜻한다. 이전의 구술적인 언어 사용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소수가 되어가는 사회이기는 하지만 구술문화의 여러 특징들을 대체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문화적 색깔을 가지지는 못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문자사회에 대한 굉장히 모호한 정의이기는 하지만 구술사회에서 문자사회로의 점진적 이행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유용하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여기서의 ‘쓰기’를 구술사회에서 이미 친숙했던 기호나 글자들이 적힌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자사회에서의 쓰기가 구술사회보다 상대적으로 늦은 역사적 시기에 발생한 언어사용 기술에 국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쓰기’는 이전 구술사회의 기호들을 사용하는 화자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사용 규칙들 또한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술사회와 문자사회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술문화에서의 연설과, 문자문화에서의 쓰기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두 가지의 다른 기술로 이해해야 한다. 전자는 어떠한 생각이나 사물을 의미하는 기호를 일정한 규칙을 지켜가며 소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육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능력이고, 후자는 표현된 기호들을 주어진 언어 안에서 단어나 문장으로 인식하고 새롭게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으로서 넓게는 읽기도 그에 포함된다.

쓰기라는 것은 소리를 받아 적는 기술적 행위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이전의 구술사회에서 행해지던 연설 등을 잘 재현해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각 사회의 특성에 따라 기존 구술사회에서의 기호와 표현들이 쓰기라는 새로운 매체 사용 기술에 적합하게 변환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할 때 문자사회에서는 구술 연설을 받아쓰는데 숙련된 사람들이 존재했고, 더 나아가 작문을 하는 방법 - 알파벳 문자들을 의미가 있는 단어나 문장 형태로 변환하는 기술 - 이 사회적으로 보편화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구술사회에서 문자사회로의 이행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고대 그리스, 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기(470-399 B.C.)이다. 이 시기의 그리스는 구술적 전통이 아직도 강력하게 남아있던 시기였다. 당시 그리스의 교육은 구술문화가 지배하던 사회답게 시와 신화를 통해 이루어졌고, 정보 전달의 지배적인 형태 또한 거의 구술적인 수단에 의존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사람들의 대다수는 글자를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쓰기나 그것의 결과물들에 대한 기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그들이 알기 원하는 것들을 입에서 입으로 이전 세대로부터 구전을 통해 배웠고, 시를 통해 인생의 지혜들을 배워나갔다. 하지만 한편으로 호머(Homer)나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시들은 점차적으로 구술전승의 형태에서 문자에 의한 텍스트의 형태로 전승되기 시작했다.

강력한 구술문화의 전통속에서도 당시 그리스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 쓰기 - 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예로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문자를 사용한 텍스트의 형태로 보존한 것을 들 수 있다. 당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사상이 문자 텍스트를 통해 그리스 사회내에서 급속하게 퍼져나가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읽기와 쓰기에 관련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시기에 이전의 시와 음악등의 구술문화적 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자’라는 새로운 매체의 존재와 그것의 사용방법인 ‘쓰기’의 영향력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 작업으로 인해 당시 그리스는 서서히 문자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구술성과 문자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저서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담고 있는 플라톤의 글들이 당시 사회에서 치열하게 토론되고 읽히고 대중화되었던 사실을 역으로 반증한다.

새로운 교육체계, 레토릭, 철학이 등장하였고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통의 기술로서 쓰기가 사회내에서 중요한 개인의 능력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헤블락(Havelock)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시인을 비판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플라톤이 다른 것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의 교육 체계를 비판했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이러한 비판은 당시의 뉴미디어였던 문자와 그로인한 문자성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세우면서 이전의 ‘시’중심의 교육 체계를 탈피하여 과학적인 인식론을 기반으로 수학과 기하학, 논리에 기반한 교과과정을 신설함으로써 인간의 삶의 목적과 지식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시각을 가르치려 애썼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새로운 매체질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과 소피스트 모두 문자라는 새로운 매체를 사용했고 그것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둘은 서로 목적이 달랐다. 플라톤은 진리를 찾는 도구로서의 문자의 특성에 주목했기에 소피스트들이 대중의 관심과 구술문화의 산물인 감정을 이용한 화술을 가르치는 것을 비판했다. 플라톤은 대중들의 담론 형성 과정을 구술적 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런면에서 실상 소피스트들은 플라톤과 실제적으로 교육의 혁신 측면에 있어서는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소피스트들이 플라톤에게 많은 비판을 받긴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론적 논의와 담론을 행하는 매체로 산문을 당시 사회에 자리잡게 했다는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기존의 전통에 맞서 질문을 던졌고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해 사고하는 방법들과 인간 지성의 한계와 능력에 대한 새로운 논의들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작업들을 진행해가면서 소피스트들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필요는 당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과 정보를 표현할 수 있으면서 보존성이 뛰어난 쓰기의 사용에 의해서 충족되었다. 더 이상 구술사회에서처럼 자신의 생각이 보존되고 전승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누구든지 자신과 타인의 생각을 읽고 비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철학의 창조적인 동력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등장과 사용 기술로 인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구술적 전통에 문자와 쓰기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시’는 암송을 통해 구전되기보다 미리 글로 쓰여져 준비되게 되었다. 우주의 문제들은 영웅적인 우화나 신화에 빗대어 설명되기보다 과학과 인간의 경험, 이성을 통한 논리 등에 의해 설명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그리스 사회의 문자사회로의 이행은 거의 완료되게 된다.